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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부산행' 열어주지 않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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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석우(공유)는 어린 딸 수안(김수안)이 부산에 있는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하자 데려다주기 위해 함께 KTX 열차에 오른다.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플랫폼과 객차 내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정체불명의 괴질환에 전염되어 괴물이 된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기차 안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상화(마동석)와 임신중인 그의 아내 성경(정유미), 고교생인 영국(최우식) 진희(안소희) 등과 힘을 합쳐 석우는 사투를 벌인다. 

사실 '부산행'(7월20일 개봉)이 흠 잡을 곳 하나 없이 완벽하고 매끈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가장 걸리는 것은 관객의 눈물을 겨냥한 후반부 장면들이다. 특히 이 영화에 담긴 단 하나의 플래시백 장면은 회상되는 내용에서 화면의 톤과 인서트 타이밍까지 의도가 조악하게 도드라져 감상주의적인 얼룩을 남긴다. 아버지의 애환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상화의 대사처럼 목적이 흐름을 누르고 지나치게 돌출된 대목도 나온다. (만드는 사람 역시 이런 노골성을 의식하고 있기에 "내 말이 좀 멋있었냐"처럼 배우의 매력으로 코믹하게 눙치는 마무리 대사를 넣은 것으로 보인다.) 소위 '신파'는 감정의 과잉 자체가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감정을 겨냥한 그 파리한 도식성이 문제다. 여름 관객을 겨냥한 대작 오락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최루적 묘사를 필요악으로 넣어야 흥행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란 사실은 정확히 10년 전 이맘때쯤 개봉했던 유사한 설정의 '괴물' 경우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이 (상화의 말에 따르면 곧 태어날 아이까지 포함해서 셋 모두) 여성이라는 결말에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 대한 반성이 분명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중 여성 주인공들이 예외없이 보호받는 것 자체가 캐릭터라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숭고한 희생을 하는 사람들과 추악한 이기심으로 내내 발버둥치는 자들로 정확히 나눈 이분법적 인물 구도가 감동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배우들이 있음에도 이 영화의 연기 앙상블 자체가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음악 역시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지시적이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을 하나하나 다 떠올리더라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지닌 매력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장르영화로서 이 작품은 시종 에너지가 넘쳐난다. 서스펜스보다 스릴을 좀더 중시한 이 대중영화의 화법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피드를 높임으로써 위력을 배가한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KTX에 시종 내달리는 좀비들로 속력을 더하고, 전국적인 재앙임을 강조하느라 각 지역 상황을 함께 묘사하는 대신 그날 그 기차에 타게 된 사람들의 운명에만 집중해 플롯까지 속도감이 대단하다. (뉴스나 전화통화로만 전해지는 다른 곳의 상황은 사실상 기차에 탄 인물들의 심리에 기름을 붓는 용도로만 쓰인다.) 석우를 제외하면 인물들의 전사(前史)도 대부분 나오지 않는데, 부산에서 애타게 기다릴 수안의 엄마 역시 거의 다루지 않는다. (액션과 유머 모두에서 맹활약한 마동석의 매력은 특별히 기록해둘 만 하다.) 


주요 무대인 기차 안의 좁은 공간은 통로 좌석 짐칸 화장실까지 알뜰하게 활용되어 단조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기차의 안과 밖 공간이 대비되는 방식이다. 좀비들이 갇힌 채 아우성치는 기차 안을 곁눈질하며 주인공들이 불안하게 플랫폼을 걷는 대전역 상황과, 좀비들이 날뛰며 사람들을 덮치는 플랫폼의 참극을 조마조마한 눈으로 객차 안에서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천안역 상황은, 서로 대조되면서 그 동선과 위치의 시각적 역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는 지옥의 문을 열듯 선로에서 공간적 제약을 일거에 풀어버린다. '월드워 Z' 같은 선례가 있긴 하지만 해일처럼 밀려오거나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부산행'의 좀비들은 그 자체로 이 재난영화가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영화는 좀비에 대한 묘사에서 '월드워 Z'를, 주인공과 관련된 스토리 설정에서 '우주전쟁'을, 지향점과 색깔에서 '괴물'을 각각 떠올리게 한다.)

'부산행'이 선사하는 장르적 쾌감을 만끽하던 관객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점차 처연해지게 된다. 한국 현대사의 환부가 저절로 하나씩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세월호의 비극이다. 극중 참극은 고교생들이 탄 칸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어른들은 이기심에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며, 뉴스 속 정부와 안내 방송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대신 거짓말과 무능력으로 피해를 증폭시킨다. 마침내 친구들을 뒤에 둔 채 탈출해 혼자만 살아난 고교생이 눈물로 자책할 때 영화는 관객과 함께 조용히 흐느낀다.

여기엔 용석(김의성)처럼 지독한 인간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냉철하게 지켜보려고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혐오감을 안기는 그런 도구적 악당이 아니다. 좀비영화에서의 진정간 갈등과 대립은 감염된 좀비와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장르가 진짜 무서운 것은 '그들'과 '우리들'을 나눠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둘로 나눈 후 그 사이에 거울과 채찍을 놓아두기 때문이다. 용석의 처참할 정도로 이기적인 몸부림보다는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노숙자를 겨냥해 처음 본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려드는 흔해빠진 그의 훈계가 더 끔찍하다. 그리고 용석의 맹목적 선동보다는 그 선동에 편승해 일말의 죄책감을 감춘 채 타인을 거리낌없이 밀어내려 말을 얹는 익명의 승객 하나하나의 고함이 더 끔찍하다. 


그럴 때 노숙자 캐릭터는 편견과 배제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이 영화는 도입부 여자화장실에서 기차 안의 첫 좀비가 모습을 드러낸 직후, 남자 화장실에 노숙자가 있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그를 (잠재적인) 좀비로 의심하게 한다. 석우의 통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된 노숙자가 대전역에서 그를 따라올 때 관객은 주인공의 행로에 방해가 되는 노숙자를 성가시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터널 끝에서 기차 안이 다시 밝아져 좀비가 탐욕스럽게 희생자를 찾아나설 때 왼쪽 좌석 밑의 석우와 오른쪽 좌석 밑의 노숙자와 정가운데의 좀비를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냄으로써, 그 순간 둘 중 누구를 살려내고 싶은지에 대한 관객의 무의식적인 바람에 회중전등을 갖다댄다.


  '부산행'의 이야기를 단 하나의 이미지로 요약해야 한다면 그건 닫힌 문, 더 정확히 말하면 열어주지 않는 문이 될 것이다.

★★★☆

글쓴이 : 이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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