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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아노말리사', '이터널 선샤인'의 어둡고 습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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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터널 선샤인>의 어둡고 습한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노말리사>를 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저절로 떠오른다. 편지나 메모를 손에 든 남자로부터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세상으로부터 연인들이 달아날 때 좁은 복도의 조명은 차례로 꺼진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 묘사들 뿐만이 아니다. 찰리 카우프먼이 각본을 쓴 이 두 이야기는 언뜻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사실 가장 깊은 곳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대고 맞닿아 있다. 

온전히 사로잡히는 순간은 여름날의 햇살처럼 찬란하지만, 금세 권태의 먹구름이 다가와 대지를 오래오래 뒤덮는다. 그러면 그토록 특별했던 단 하나의 연인은 빛을 잃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우연의 음울한 늪으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실수는 반복되고 사람은 바뀌지 않으며 교훈은 없다. 결국 자신의 꼬리를 삼킨 채 무겁게 순환하는 시간의 수레바퀴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끝내 미소를 짓는다. 
고객서비스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마이클(데이빗 듈리스)은 신시내티로 출장을 갔다가 오래 전 헤어졌던 연인 벨라(톰 누넌)와 만나지만 앙금을 풀어내지 못한다. 호텔 객실로 돌아온 그는 어떤 목소리에 이끌려 복도를 누비다가 때마침 자신의 연설을 들으러 그곳에 찾아왔던 리사(제니퍼 제이슨 리)와 에밀리를 발견한다. 둘 모두 마이클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그에겐 리사만 눈에 들어온다. 
찰리 카우프먼과 듀크 존슨이 공동 연출한 <아노말리사>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사 영화 이상의 실감으로 내내 관객을 놀라게 만든다. 각본을 쓴 <존 말코비치 되기>와 <이터널 선샤인>에서 직접 연출까지 맡은 <시네도키 뉴욕>까지, 찰리 카우프먼이라면 흔히 그 기발하기 이를 데 없는 착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사실 그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황당할 수도 있는 설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사실적 디테일, 그리고 정서적인 설득력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페이소스다. 이 영화의 베드신이 놀라운 것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서 기술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충실히 살려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분명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마음이 황폐한 사막과도 같은 이 남자는 권태 때문에 내면이 붕괴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불쾌한 인간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감정적 파장이 약화되는 것도 아니다. 일견 기이하게 보이는 <아노말리사>의 이야기가 그저 한 남자의 속보이는 변덕과 가소로운 자기연민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건 결국 삶과 사랑의 실존적인 딜레마다. 단지 실존의 문제 역시 특정인의 계급과 인종과 나이와 인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형태로 드러날 뿐이다. 

이 영화는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관객으로선 그 장면을 객관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곧이어 그 비행기로부터 서서히 줌아웃되면 그건 다른 비행기에 타고 있던 마이클이 바라보는 주관적 시점에서의 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첫장면은 이후 펼쳐질 <아노말리사>의 이야기가 마이클의 주관적 심리와 시점에 토대해 전개될 것임을 말해주는 알림판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이클이 묵은 호텔 이름이 프레골리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한 힌트다. (피해망상의 일종인 프레골리 망상은 자신이 만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실은 위장한 동일인이라고 믿는 정신질환을 의미한다.) 마이클에게 극중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의 목소리와 얼굴이 같다는 설정은 이 이상한 세계에서 펼쳐지는 기담이 결국 생로병사하는 사랑에 대한 탄식과 끝없이 미끄러지는 소통에 대한 절망을 담아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때는 눈길을 사로잡는 신기한 물건이었으나 이제는 깨지고 부서진 채 흉한 모습으로 같은 노래만을 반복하는 극중 인형은 상처의 위치에서 버튼과 관련된 습성까지 어느 캐릭터와 고스란히 겹치면서 이 쓸쓸한 이야기를 응고시키는 서늘한 이미지가 된다. 

"오직 그대만이"라는 고유성은 결국 세월 속에서 "다른 누구라도"라는 익명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마는 것일까. 아픔을 남기며 끝났다고 해서 그 경험 전체가 부정되어야 하는 걸까. <아노말리사>에서 유일하게 마이클의 시점을 벗어난 특정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곱씹어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별다섯개 만점)

글쓴이 : 이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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