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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옥자' 횃불이 아니라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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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설국열차'가 울증에 빠진 서늘한 이성이 낳은 야심차고도 건조한 결과물이라면, '옥자'는 조증에 들어선 따스한 감성이 빚은 촉촉하고도 소박한 산물이다. ('옥자'의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또 이렇게 얘기해보면 어떨까. '마더'가 인간 존재의 탁한 늪 속으로 한없이 자맥질하는 작품이라면, '옥자'는 세상의 밑바닥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도 다시 부상하는 영화다. ('옥자'의 뒤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옥자'의 후반부는 참혹하도록 슬프다. 그럼에도 이 기이한 동화에는 끝내 가려지지 않는 햇살이 있고 결코 억누를 수 없는 부력이 있다.


미국기업 미란도의 CEO 루시(틸다 스윈튼)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슈퍼돼지들의 비밀을 감춘 채 세계 각지로 보내 키우게 함으로써 홍보에 이용하려 한다.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 희봉(변희봉)과 함께 살던 미자(안서현)는 10년째 가족처럼 지낸 슈퍼돼지 옥자를 미란도가 데려가자 되찾아오기 위해 홀로 험난한 여정에 나선다.

개봉 당시의 '마더'나 '설국열차'와 달리,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무엇보다 '플란다스의 개'와 '괴물'의 잔영이 짙게 일렁거린다. '플란다스의 개'는 누군가에겐 가족과도 같은 동물을 다른 누군가가 잡아먹으려 하면서 벌어지는 추적극이다. '옥자' 역시 그렇다. (전자에는 순자라는 개가 나오고, 후자에는 옥자라는 돼지가 나온다.)  


'괴물'에는 거대한 동물이 어이없게도 비탈에서 구르는 슬랩스틱 묘사가 있고, 그 동물의 입 안에서 소녀가 나오게 되는 장면이 있으며, 질주하는 소를 피해 사람들이 달아나는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를 연상시키는 군중신이 있고, 시차를 둔 진동을 인상적으로 그려내는 액션신이 있으며, 고층 건물 안에서 다대일로 벌어지는 추격전이 있고, 주인공이 이전까지 본 적 없던 어린 생명을 보살피며 함께 식사하는 라스트신이 있다. '옥자' 역시 그렇다. (전자에서는 소녀가 그 동물의 입 안에서 죽은 채 꺼내지지만, 후자에서는 소녀가 그 동물의 이를 닦아준 뒤 입 안에서 유유히 몸을 빼낸다.) 


말하자면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세계를 이뤄온 흥미진진한 요소들을 총정리해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강인하면서 저돌적인 여성 주인공으로 고아성이나 배두나 같은 배우를 활용했던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안서현을 캐스팅해 시종 동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영화에서 미자는 종종 캐릭터라기보다는 동력 그 자체로 보인다.) 지하도의 낮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내달리는 슈퍼돼지든, 다리 밑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대형트럭이든, 작은 길을 메운 채 쫓고 쫓기는 사람들이든, 좁은 공간에 비해 캐릭터나 물체를 크게 혹은 많이 설정해 빨리 움직이게 함으로써 마찰의 스릴을 만들어낸다. 인물은 남 앞에 혼자 나서면 장광설을 늘어놓고, 여럿과 함께 모이면 나사 풀린 행동을 하는데, 그러다가 군중을 이루게 되면 난장판이 펼쳐진다. 


그리고 부패한 시스템이 오작동하거나 무신경한 상황에서 약한 자는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더 약한 자를 간절하게 보살핀다. 봉준호 특유의 재치 넘치는 유머와 리듬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여기엔 배우들의 연기에서 개별 에피소드까지 우화적으로 경쾌하게 들떠 있는 초중반부와 충격적인 묘사를 통해 비판적 메시지를 서슬 퍼런 실감으로 전하는 후반부가 이질적으로 맞붙은 채 기묘하게 관객을 사로잡기까지 한다. 

이와 관련해 '옥자'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인물들의 동선이다. 봉준호의 세계에선 높이가 넓이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옥자'는 이점에서 더한층 흥미롭기도 하다. 캐릭터의 극중 동선을 수평 방향으로 파악하면 오지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킹콩'의 서사에 가깝지만, 수직 방향으로 떠올려보면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명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려는 오르페우스 신화와 흡사하다. (심지어 미자는 그 신화에서처럼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충고까지 듣는다.) 


극 초반에는 주로 옥자가 하강한다. 비탈에서 굴러내려와 감나무에 부딪침으로써 감을 챙길 수 있게 하고, 계곡물로 뛰어내려 물고기를 거둘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낭떠러지에서의 절체절명 위기에서 옥자는 스스로 몸을 던져 하강함으로써 미자를 살려낸다. 


그러니 이제 미자가 하강해 옥자를 구해낼 차례다. 옥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 미자는 지속적으로 하강한다. 그 직후 산비탈을 미끄러지듯 내려가고, 서울에 도착한 첫 장면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올라가는 계단에서 혼자 몸을 돌려 내려가며, 옥자를 실은 트럭을 좇아 주택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간다. 그것도 모자라 땅밑으로까지 내려간다. 지하도까지 하강한 끝에 미자는 옥자와 재회한 후 마침내 지하주차장의 좁은 통로를 통해 뒤쫓아오는 문도(윤제문)를 떨구며 상승한다.

하강은 미자와 옥자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돕는 동물해방전선(ALF)의 행동 방향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작전을 마친 대원들은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한 명씩 차례로 강물을 향해 다이빙을 한다. ALF의 리더인 제이(폴 다노)는 뉴욕 맨해튼의 미자 객실에 찾아와 향후 계획을 설명한 뒤 건물 밖의 철제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건 서사의 진행 방향에서도 마찬가지다. '옥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양쪽 뿌리에는 (아마도 옥자 위탁 계약을 맺었을) 미자의 할아버지와 (아마도 미란도를 창업했을) 루시의 할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혈통 역시 하강해서 미자와 루시까지 내려와야 본격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 동선이든 혈통이든 계급이든, '옥자'는 일단 밑바닥에 닿아야 결정적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미자와 옥자는 그들을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끊겨 있다. 빤히 코앞에 있음에도 미란도 코리아 직원이 유리벽 안에 들어앉은 채 자동응답 전화기를 이용하라면서 대화를 거부하는 장면이 단적으로 그런 상황을 요약한다. 미자와 옥자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희봉은 마이크와 스피커까지 동원해 부르지만 둘은 잠들어 있어서 듣지 못한다. ALF 대원들 역시 미자의 본의를 잘못 파악한다. 대신 세상에서 딱 둘 뿐인 미자와 옥자는 긴밀하게 소통한다. 이 영화는 옥자 귀에 미자가 뭔가를 긴밀하게 속삭이는 장면에서 대사가 들리지 않게 처리함으로써 관객들까지 둘만의 소통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든다. '옥자'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것은 세상이라는 재앙을 겪는 두 어린 생명의 필사적 공감이다. 


미자와 옥자에만 한정해서 보면 이 영화의 내용은 상당 부분 익숙하다. '킹콩' 'E.T.' '쉰들러 리스트' 등 떠오르는 영화도 많다. 슈퍼돼지 모티브는 심지어 '간첩 리철진'에도 나온다. 하지만 루시(의 가족) 혹은 ALF까지 염두에 두면 이 이야기의 신선도는 달라진다. (ALF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옥자'의 스핀오프 영화가 보고 싶다.) 무엇보다 이건 혹시 세 자매의 이야기인 것은 아닐까. 미자와 옥자, 낸시와 루시, 그리고 어쩌면 루시와 미자.


맨하탄의 야외 무대에 함께 오를 때는 입고 있는 옷까지 거의 같은 미자와 루시는 수시로 겹치면서도 선명하게 대조된다. 미자는 할아버지와 다정하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루시는 할아버지를 비난하며 등장한다. 미자는 혈통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는데 루시는 혈통에 대한 기억에 짓눌려 있다. 미자는 (케이의 입장에서는 선의로 했던) 거짓말의 피해자이지만, 루시는 (적어도 자신의 믿음 속에서는 선의로 했던) 거짓말의 가해자이다. 언니인 미자는 사이 좋은 여동생 옥자를 결국 혼자 힘으로 구해내지만, 여동생인 루시는 사이 나쁜 언니 낸시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문제로부터 도망친다.

이제 클라이맥스는 결국 강한 언니들끼리 만나서 각자의 약한 여동생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판 짓는 광경이 된다. 이 이야기에서 선의지 자체인 미자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맨얼굴 자체인 낸시를 만나 금돼지를 줄테니 옥자를 돌려달라면서 거래를 제안해 성공시킨다. (미자와 루시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대조된다. 한쪽에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실패했던 거래를 성공시킨 손녀의 결말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도덕적 파산을 교정하려다가 또 다른 도덕적 실패에 이르게 되는 손녀의 귀결이 있다.) 


사실 이것은 좀 이상한 거래다. 왜냐하면 그 금돼지는 원래 희봉이 옥자를 소유하는 댓가로 치르려던 돈으로 대신 산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같은 액수의 돈으로 같은 것(옥자)를 사려던 희봉의 이미 실패했던 거래를 미자가 성사시킨다. 이건 거래할 상대방이 낸시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직접 깨물어서 순금임을 확인하는 절차만 밟는 데서 알 수 있듯, 루시와 달리 낸시는 오로지 액수만 맞으면 그 즉시 거래를 하는 배금주의의 가장 단순한 작동원리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낸시의 세계 속에 들어가서 낸시의 방법으로 거래를 제안했다고 해서 미자가 내면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미자는 가짜(돼지)를 바닥에 던져 건넴으로써 진짜(돼지)를 얻어냈다. 

오히려 미자의 마음을 뒤흔든 진짜 위기는 그 다음에 온다. 옥자를 데리고 나오는 길에서 보고 들었던 수많은 '옥자들'은 그게 최선일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든다. 흡사 홀로코스트를 연상케 하는 살풍경 속에서 미란도 시스템이 여전한 가운데, 옥자와 우연히 합류하게 된 새끼 돼지 한 마리만 구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그걸로 충분할 리가 없다. 그래도 둘은 지옥의 밑바닥으로부터 구원되었다. 오로지 옥자를 구할 생각 밖에 없었던 미자는 험난한 여정의 끝에서 생명 일반에 대한 연민을 배웠다. 더불어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ALF 대원들 역시 통역이 신성하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다른 존재와의 공감과 소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학습했다. 내내 보살핌의 대상이었던 옥자는 말미에 이르러 또 다른 새끼 돼지를 보살피는 주체가 됐다. 봉준호의 세계에서 희망은 언제나 횃불이 아니라 불씨였다. 

★★★★

글쓴이 :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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