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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번도 더 변한 인생 [스플릿]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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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박꽃 기자] 

정성화, 하면 성공한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부터 떠오른다. ‘맨 오브 라만차’ ‘레미제라블’ 등 대형 뮤지컬은 물론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룬 ‘영웅’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 화려함에 잠시 잊은 사실, 그는 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얼굴은 알려졌지만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그런 삶을 꽤 오래 살았다.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그의 삶이 반전됐을까? 명실상부 뮤지컬 스타로 자리잡은 그가 다시금 영화 <스플릿>으로 대중 앞에 섰다.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 ‘철종’(유지태)을 미워하는 악역 ‘두꺼비’로 말이다. 정성화는 지금, 또 한 번 인생을 반전시키는 중이다.


<스플릿>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축하부터 해야겠다. 뮤지컬 ‘킹키부츠’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고맙다. 그저께 공연이 완전히 끝났다. 그리고 결과도 나름 좋았다.(웃음)


15cm 하이힐을 신고 공연 한 걸로 유명하더라. 

그건 ‘신는다’보다는 ‘탄다’ 혹은 ‘올라선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웃음) 용케도 그 위에 올라타서 공연을 마쳤다. 처음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서 연습실에 들어가면서 힐부터 신곤 했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스플릿> 촬영은 상대적으로 쉬웠을 것도 같다.(웃음) 

어디 그렇겠나.(웃음) 뮤지컬은 딱 두시간 정도만 죽을 고생을 하면 끝나는데 영화는 하루 온종일 고생해야 돼서 힘들더라.(웃음) 또 언론 시사회 후에는 기자들 반응이 너무 고요해서 좀 우려도 됐다. 우리 영화가 재미 없나? 하고 있었는데 그 후에 올라오는 리뷰들을 읽어보니 다행히도 내용이 좋더라. 아 이 때부터가 진짜 피드백이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뮤지컬계의 흐름과도 비슷한 것 같다. 뮤지컬도 ‘미디어데이’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관객에게 선보이기 전에 기자와 일부 팬들에게 먼저 몇몇 장면을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 때도 역시나 침묵이다.(웃음) 기자들은 영화나 공연을 볼 때 기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느라 생각이 많은 것 같다.(웃음) 

대형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레미제라블’ ‘킹키부츠’ 등에서 확고한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영화 <스플릿>에서 맡은 ‘두꺼비’ 역할은 주인공 ‘철종’(유지태)곁을 맴도는 주변 인물의 느낌이다. 

내가 뮤지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든 영화계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두 업계에서 배우에게 요구하는 작업 방식도 다르고, 배우가 어떤 재료로 기능 해주길 바라는지도 다르다. 한 쪽에서 잘 하는 배우라고해서 다른 쪽에서도 잘 할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영화를 찍을 땐 영화계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결코 까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물론 그런 위치라는 게 어디 있겠냐마는.(웃음) 아무튼 이 판에서는 내 위치가 공고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 가치를 증명해 내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뮤지컬계에 처음 입성했을 때도 상당한 노력을 한 걸로 안다. 

조승우 배우와 맞붙은 ‘맨 오브 라만차’때 특히 그랬다. 그 당시 뮤지컬 팬들에게는 정성화라는 사람이 저렇게 큰 공연에서 주연을 맡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컸던 상황이었고, 나 역시 소극장에서 열리는 작은 뮤지컬에서 주연을 해본 것 외에는 특별한 경험이 없었다. 내가 그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절이었다. 정말 죽을 힘을 다 해서 연습했다.(웃음)


94년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어떻게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건가. 

2003년에 표인봉 선배가 연출한 ‘아일랜드’라는 연극을 했다. 개그맨 김경식과 합을 맞춘 2인극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뮤지컬 제작사 중 하나인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가 공연을 보러 왔다가 날 섭외했다. 사실은 표인봉 선배를 보러 온 건데 말이다.(웃음) 운이 아주 좋았다. 그렇게 뮤지컬계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 

개그맨으로 데뷔하긴 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진 못한 사람이었다. 설령 정성화라는 개그맨을 알고 있다고 해도, 미친듯이 좋아해주는 팬은 거의 없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무라도 썰어야 된다고들 하는데 난 두부도 못 썬 느낌이랄까?(웃음) 지금 돌이켜보면 내 연기도 개그도 너무 밋밋했던 거다. 그러니 ‘틴틴파이브’의 멤버가 됐을 때도 못 한다고 짤리고.(웃음) 그 땐 정말 충격이 컸다. 군대를 다녀 와서 ‘카이스트’라는 드라마를 찍었는데도 역시나 입지는 조금씩 조금씩 계속 내려가더라.(웃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이 뚝 끊겼다. 

반전의 계기가 있었을 텐데. 

당시 부모님께는 ‘독립 하겠다’고 호기롭게 선포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근데 돈은 다 떨어졌고 일은 없고.(웃음) 혼자 살면 전기세도 내야 하고 이것 저것 할 게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난 워낙 돈 쓰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웃음) 그때 내가 단골이던 바 사장님이 날 보더니, 요즘 어려운 것 같은데 자기 가게에 와서 일을 하라고 제안하더라. 여기서 와신상담 하고, 대신 좋은 작품 들어오면 그때는 쿨하게 놔주겠다고 말이다. 심지어 주급을 준다고 하더라!(웃음)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부수적인 이야기지만, 그 때 옆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지금 내 아내가 됐다.(웃음) 그 후로 연극 ‘아일랜드’에 합류하게 되고, 그걸 계기로 뮤지컬도 시작하게 된 거다.


바 사장님이 여러모로 상당한 조력자였다.(웃음) 

그렇다. 내 인생에 한 번씩 그런 조력자가 있다. 그 시절에는 바 사장님이었다면, 뮤지컬을 시작하고 나서는 남경주 선배가 아주 훌륭한 멘토가 돼 줬다.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철학도 없었다. 그때 남경주 선배가 나에게 계속 조언을 해줬다. 배우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또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 사실 처음에는 그 선배 말이 굉장히 성경책처럼 다가오더라.(하하하) 그런데 조금씩 선배의 그런 말들에 젖어 들면서 연기에 대한 견해들이 생겼다. 그간 보지 못했던 연기에 관한 책도 찾아보기 시작했고.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멜리사 브로더가 쓴 ‘배우 수첩’이라는 책이다. 이정도는 내가 다 읽을 수 있겠구나 싶은 자신감이 생길 만큼 얇은 책이다.(웃음)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배우 수업’도 유명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멜리사 브로더가 쓴 글귀들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하나하나 와 닿는 내용이 많더라.


예를 들면. 

‘배우의 액션을 가로막는 건 배우의 액션이다’ 이 말이 정말 멋지다. 액션을 더 하고자 하면 할수록 진실된 표현에서는 멀어진다는 의미다. ‘배우 수첩’은 그런 글귀들이 액기스처럼 모여있는 책이다. 그 때 읽고 배웠던 걸 ‘아이 러브 유’라는 뮤지컬을 하면서 많이 써먹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연기를 하는 맛도 조금 알게 됐다. 돌아보면 그 때를 계기로 내 인생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그러다가 <위험한 상견례>(2011)나 <댄싱퀸>(2012)같은 작품으로 조금씩 영화계로 발을 넓혔다. 

코미디 영화에 대한 욕심이 좀 있었다. 송새벽, 이시영 배우가 나온 <위험한 상견례>(2011)에서는 ‘운봉’이라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그때 촬영하면서 이게 참 재밌는 일이란 걸 느꼈다. 개그 무대나 뮤지컬 무대에서와는 다르게 스크린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코미디만의 매력이 있다더라. 

어떤 매력인가. 

순발력으로 웃기려고 대들면 하나도 안 웃긴 상황이 된다는 거다. 오히려 미리 약속된 대로 진지하게 연기해야 그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는 것 같다. 코미디 영화를 한 번 더 하게 되면 <위험한 상견례>때보다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욕심이 난다.


<스플릿>에서는 악역 ‘두꺼비’로 출연했다. 

영화에서 그렇게 비중 있는 악역을 소화해낸 건 처음이라 나에게는 상당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5백만불의 사나이>(2012)라는 영화에서 ‘무덕’이라는 나쁜놈으로 등장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30초 정도 나오고 말았던 차라서.(웃음) 아이들을 캠핑장에 데려가서 고기도 구워주고 이것 저것 챙겨주는 자상한 아빠가, 자기 똘마니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니 장기라도 팔래?” 하는 섬뜩한 대사를 치는 역할이었다.(웃음) 굉장히 서글서글해 보이는 웃음 뒤로 악랄한 느낌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서 독특한 면모가 있었다. <스플릿>의 ‘두꺼비’역을 제안 받았을 때 그 때 그 캐릭터가 탁 떠오르더라.


이미 한 번 구축해놓은 캐릭터를 활용 한 셈이다.(웃음) 

그때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너무 아까워서 써먹어보고 싶었다. 그 영화가 워낙 안돼서(웃음) 많은 관객이 내 악역을 보지 못했으니까. 사실 ‘두꺼비’는 기본적으로 내가 경험해봤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캐릭터여서 더 쉽게 선택한 것도 있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인가. 

내가 그리 잘나가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 있던 시절, 소위 ‘셀럽’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친구나 선배들과 같이 다니면 꼭 사람들이 그쪽으로만 우르르 몰리곤 했다. 난 이쪽에 있는데 사람들은 와! 하면서 저쪽으로 달려가는 거지.(웃음) 그러면 ‘나한테도 사인 좀 받지…’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고. 괜히 웃는 척 하기도 힘들었다. 그런 생활을 꽤 오랫동안 했다. 그러니 ‘두꺼비’의 마음이 뭔지 정말 잘 알겠더라. 상대방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큰 거다.


결론적으론 그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듯하다. 

정말 다행인 일이지.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열등감이 그 사람을 발전시켜 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리, 하면서.(웃음) 물론 마흔을 넘기면서 생각 자체가 많이 바뀌기도 했다. 어릴 때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 몰리는 팬들이 야속하게도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팬들이 나에게’도’ 몰리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너무 얽매여 있었구나 싶더라. 어리석었던 거지. 내가 열등감이라고 생각했던 감정들의 정체가 뭔지도 알게 된 것 같다. 

정체가 뭐였나.(웃음) 

열등감이란게, 결국 내가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더라. 내가 왜 개그맨이 됐고, 왜 배우가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내가 좋아서다. 그런데 데뷔 초창기에는 괜히 허세가 있어서 ‘여러분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하곤 했다. 포커스를 남에게 맞추다 보니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내 감정이 좌우되는 문제가 생긴 거다. 내가 소화하는 역할, 내가 해내는 퍼포먼스에 스스로 만족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누가 날 어떻게 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고 나서야 말이다.(웃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개봉한 탓에 <스플릿>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느낌도 든다.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현재의 정국 때문에 심정적으로 지쳐있는 사람들이 경쾌한 오락 영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을 수도 있다. 리프레시가 필요한 거지. 그러니 ‘정국 때문에 힘들다’고 볼 수만은 없는 거다. 또 영화를 통해 일부 관객들과 제작자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이 이정도는 된다는 걸 증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영화를 토대로 얼마든지 다음 영화를 기약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윤제균 감독이 나한테 그러더라. 이런 악역을 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앞으로 그런 역할 많이 들어올 것 같다고. 그런 업계의 평가들이 중요한 거다. 음. 근데, 계속 악역만 들어오면 어떡하지?(웃음)


개그맨으로 데뷔해 드라마, 영화, 뮤지컬까지 수없이 다양한 판에서 활동했다. 어떤 곳에 있을 때 가장 ‘나답다’는 생각이 들던가. 

역시 코미디를 할 때다. 어떤 무대에서든 그걸 할 때 제일 재밌더라. 뮤지컬도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영웅’이나 프랑스 혁명을 다룬 ‘레미제라블’을 할 때보다는 신나고 흥겨운 ‘킹키부츠’를 할 때가 훨씬 심정적으로 재미있었고.(웃음) 역시 나에겐 희극인 다운 면모가 있구나 싶다. 

상당히 화려한 삶이지만 외로운 순간도 있을 텐데. 

좀 단순해보이지만 체력적으로 저하될 때, 그때가 가장 외로워진다. 특히 뮤지컬을 하면서 몸이 힘들 때는 내가 대체 무엇 때문에 이걸 하고 있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웃음) 하는 생각을 자꾸만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런 시기를 이겨낼 동력이 생겼다. 이제 갓 26개월 된 딸이 있다. 물론 애를 보는 건 힘들지만(웃음) 밖에 나오면 눈에 밟히고 그럴 정도로 예쁘다.


가족이 생기면서 인생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내가 그려온 인생의 청사진이 바뀌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딸이 너무 사랑스럽다보니 그 애가 좋아하고 잘 보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예전에는 거들떠도 안 본 EBS ‘모여라 딩동댕’의 ‘번개맨’역할이 이제는 너무나 흥미롭고.(하하하) 어린이 뮤지컬을 한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도 하게 된다.


입담이 상당하다. 듣다 보니 당신 이야기에 빨려드는 느낌이다. 

다른 배우들은 인터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계속 말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웃음)


뮤지컬도, 영화 촬영도 끝났는데 당분간 무얼 할 생각인가. 

개인 연습실이 하나 있다. 지금 이 인터뷰 장소의 반 만한, 사람들이 오래 있으면 답답해 할 정도의 아주 작은 공간이다. 거기에 컴퓨터와 마이크를 하나씩 갖다 놓았다. 내가 나중에 쇼를 하나 만든다면 어떤 게 좋을지 연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렸을 때는 누가 나에게 일을 주기만을 바랐는데 이제는 내가 내 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연구하는 과정이 굉장히 즐겁다. 그렇게 진행중인 프로젝트들이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궁금하다. 

뮤지컬 시장에서 한참 지내면서 깨달은 건 배우는 어쨌든 비정규직이라는 거다.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지만.(웃음) 누가 책임지고 그 배우에게 일을 주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 스스로 자구책이 있어야 된단 생각이 들더라. 물론 배우가 정규직이 돼야 한단 말은 결코 아니다. 그건 함정이 더 많다. 조금만 노력해도 월급은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주하게 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배우의 연기적 발전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제작자의 선택을 ‘받아야만’하는 상황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도 영화도 하지 않는 때에는 내 힘으로 만들어낸 쇼를 통해 관객과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더라. 그동안 날 좋아해준 사람들과 함께 부담감 없는 자리로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천천히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취를 오래 하다 보니 음식 하는 걸 꽤 좋아하게 됐다. 결혼 전에는 친구들이랑 술 먹으면 3차는 우리집 가자! 하고 데리고 와 음식 만들어 내주곤 했었는데.(웃음) 요즘엔 집에 혼자 있을 때 소소하게 만들어 먹는다. 그럴 때 기분이 좋아진다.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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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

무비스트|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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