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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문라이트' 여기엔 영화적 마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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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나오미 해리스)와 함께 외롭게 살아가던 소년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은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빈 집에 숨었다가 마약상 후안(메어샬라 알리)과 마주친다. 샤이론을 측은하게 여긴 후안은 자신과 여자친구 테레사(자넬 모네)가 함께 사는 집으로 그를 데려가 하루 동안 돌본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놀 때도 겉돌던 샤이론이 자신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거는 케빈(제이든 파이너)을 마음에 두기 시작한 후 둘 사이에 세월이 흘러간다.

배리 젠킨스가 연출한 '문라이트'는 소박하고 간명하면서도 강렬하고 아름답다. 보기에 따라서 '보이후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브로크백 마운틴'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는 관조가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여진으로 뒤흔들어놓는 경험이 점화되는 순간의 광휘를 목격하는 흥분이 있다.

이 영화 후반부에는 신비롭게까지 여겨지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샤이론은 요리사가 된 케빈을 10여년 만에 만나기 위해 애틀랜타에서 마이애미까지 차를 몰고 간다. 차에서 내려 빗질을 한 후 식당까지 걸어가는 샤이론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지켜본다. 그러다 들어서는 순간 출입문에 매단 작은 종이 맑은 소리를 내는 광경이 짧게 클로즈업 인서트되고, 이어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가 낭만적으로 흐르는 식당 안을 가로질러 샤이론이 구석 자리에 앉는 모습이 담긴다.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제대로 그를 보지 못한 케빈이 "곧 갈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둘의 대면은 두 차례나 유예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1분 가량 길게 음악과 공간과 인물들 사이를 떠다니던 롱 쇼트는 케빈이 샤이론을 확인하고 놀라는 얼굴을 담은 샤이론 시점의 정면 클로즈업 쇼트로 급격히 변화하며 감정적 리듬을 단숨에 끌어올린다. 이때 케빈의 입에서 흘러나온 "샤이론!"이라는 외침은 화면으로 드러나는 그의 입 모양과 맞지 않는데, 이처럼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엇갈리게 결합된 사운드는 뒤에 이어질 샤이론의 정면 클로즈업 쇼트에 선행하며 그곳의 그 순간을 둘만의 특별한 시공간으로 구획짓는다.

자리를 옮겨 앉아 오랜 회포를 풀며 둘이 나누는 이야기는 반가움과 안타까움, 설렘과 어색함 사이를 오가며 화제에 따라 끊기거나 이어진다. 대화가 고비에 이르렀을 때 샤이론은 케빈에게 왜 10년만에 전화를 했는지 묻는다. 케빈이 "말했잖아, 손님이 주크박스에서..."라고 답하자 샤이론은 진짜 답을 이야기하라며 그 말을 곧바로 잘라버린다. 그러자 케빈은 "이 노래가 나왔어"라면서 주크박스로 걸어가 바바라 루이스의 노래 'Hello stranger'를 틀고 샤이론을 바라본다.

"이봐요, 이방인. 다시 보니 정말 좋아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오래된 노래는 가볍고, 직접적인 가사는 소박하다. 이어서 마주 바라보는 샤이론의 단독 쇼트 속으로 케빈이 걸어 들어오고, 카메라는 서서히 이동해 건너 편에 앉게 된 케빈의 얼굴을 샤이론 시점으로 담는다. 이에 대응해 상념에 잠긴 샤이론의 얼굴을 뭉클하게 스케치하던 쇼트는 그 여운이 다 흐르기도 전에 다시금 맑게 딸랑이는 출입문 종의 인서트 쇼트로 불현듯 끊기며 식당 장면 전체가 끝난다. 거기서 구구절절 더 설명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을까.

15분 가깝게 펼쳐지는 이 식당 장면에 담긴 것은 영화적 마법이다. (나는 그걸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다.) 언어가 설득을 포기하고 끊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영화가 어떻게 설득해낼 수 있는지를 마술처럼 보여준다. 인물의 감정에 의해 옮겨 다니며 유영하는 이 장면의 카메라는 영화가 마음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훌륭히 예시한다. 극중에서 인물의 시선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일 때, 그 방향은 늘상 샤이론으로부터 출발해서 케빈에게로 흘러간다. 하나의 쇼트 안에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항상 샤이론이다. 그리고 동화적이기까지 한 종소리는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마치 의례처럼 그 공간을 신화화한다. 마이애미의 평범한 쿠바음식점은 이제 공간의 공기와 냄새와 온도까지 고스란히 담겨진 채, 고단한 세월을 겪어왔던 샤이론에게 영화가 베푸는 축복 같은 선물의 장이 된다.

'문라이트'는 9살과 16살 그리고 20대 중반의 샤이론을 다루는 3부로 구성됐다. 각 부는 각각 '리틀' '샤이론' '블랙'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모두 샤이론의 이름 또는 별칭이다. 이 호칭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리틀은 남들이 그를 놀리며 낮추어볼 때 쓰는 호칭이다. 흑인이고 동성애자이며 빈곤계층인 그에게 샤이론이라고 붙여진 공식적 이름은 인종 계급 성정체성 등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조건과도 같다. 블랙은 그의 인종을 떠올리게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선 케빈이 샤이론을 부르는 호칭의 의미가 더 짙다. 극중에서 오직 케빈만이 샤이론을 블랙으로 부른다. 그리고 블랙이란 호칭만이 (그렇게 불리고 싶어하는) 샤이론의 의지나 지향과 관련이 있다. (3부에서 샤이론은 블랙의 이니셜인 'B'로 호명된다.) 그건 그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인 케빈을 떠올릴 때만 특별한 호칭이 된다.

좀더 흥미로운 것은 케빈이 각각의 부에서 처음 등장할 때 그 챕터의 제목으로 샤이론을 부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케빈은 1부 운동장 장면에서 "이봐, 리틀"이라고 외치고, 2부의 학교 복도 장면에서 "샤이론, 뭐해?"라면서 다가오며, 3부의 한밤 전화 장면에서 "안녕, 블랙"이라고 운을 뗀다.) 그러니까 결국 3부로 나뉘어 묘사되고 있는 이 모든 이야기의 저류에 강력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케빈이다.

'문라이트'에 선명하게 솟아오르는 희망 같은 것은 없다. 샤이론이 모처럼 행복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반드시 불행이 불쑥 튀어나와 균형을 잡는다. 샤이론이 케빈의 식당으로 들어설 때 인상적으로 들려오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 'One step ahead'는 이 영화에서 이미 그 전에 한 번 더 흘러나왔다. 그건 어린 샤이론이 후안 아저씨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수영을 배우고 달빛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에 누려보지 못하던 행복감을 느끼게 된 직후였다. 후안과 헤어져 집에 들어서자마자 샤이론이 처음 보게 된 낯선 아저씨와 함께 엄마가 마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 그 노래가 깔렸다. 식당으로 들어설 때 그 노래가 그때까지의 고통을 중화시켜주는 향초 같았다면, 집에 들어설 때 그 노래는 직전의 안정감을 상쇄해 무화시키는 채찍 같았다.

One step ahead. 한 발짝만 앞으로 내디뎌도 삶은 급격한 낙차를 겪는다. 그건 샤이론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케빈과의 짜릿했던 순간을 해변에서 경험하고 난 후 설레며 집에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변은 달빛으로 영롱하게 물들어 있었지만,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샤이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은 천장의 더러운 전등빛이었다.

이야기가 막을 내리는 3부라고 해서 샤이론에게 특별한 서광이 비치는 것도 아니다. 샤이론은 외모에서부터 하는 일까지, 1부에서의 후안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마도 마약상으로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듯한 후안처럼, 어른이 된 샤이론 역시 거리에서 마약을 팔다가 당장 내일이라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후안과 샤이론은 일종의 부자관계이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미래와 과거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자력으로 마약을 끊지 못해 치료시설에 가 있는 엄마와는 온전히 화해하지 못했고, 그때 그 해변에서의 경험 이후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뒤척이던 어느 밤 그는 10년만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케빈에게 찾아갔다. 불쑥 찾아온 샤이론의 모습에 놀라며 케빈은 이렇게 말한다. "어, 어떻게 왔어? 아니, 온 게 좋은 거지." 그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샤이론은 그냥 그렇게 계속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전화가 왔고, 어쨌든 샤이론은 케빈에게 갔다. 그리고 어쨌든 그렇게 샤이론이 케빈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감싼 채 어둠 속에 웅크려 앉은 모습을 보여준 후 '문라이트'는 오래 전 과거로 돌아가서 마침표를 찍는다. 거기선 아홉살 어린 샤이론이 달빛에 젖은 채 등을 보이고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는 그 순간 카메라를 들어 샤이론 위에 떠 있는 달을 담지 않는다. 희망이라는 것을 그렇게 만만히 쥐어주는 건 거짓 위안이라고 설명하듯, 달빛만이 푸르스름하게 프레임 안에 퍼져 있을 뿐 정작 달은 영화 밖에 있다. 우리는 그 빛이 어디서 오는지 짐작만 할 뿐 눈으로 정확히 짚어낼 순 없다. 그러나 그 말을 뒤집으면, 명확히 짚어낼 순 없어도 어쨌든 그 빛이 소년을 푸르게 적시고 있다.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이 푸르게 보인다. 십수 년 전 바닷가에서 샤이론은 후안으로부터 그 말을 했던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문라이트'의 맨 마지막 쇼트에서 달빛을 받고 푸르게 돌아서 있던 샤이론은 어느 순간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돌아본 샤이론의 눈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이 영화의 각 챕터에서 처음 등장하는 케빈이 그를 부를 때 샤이론은 그때마다 몸을 돌려서 바라보았다. 샤이론에게 케빈은 문득 돌아보면 늘 거기에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샤이론은 극의 마지막에서 후안 그리고 케빈과 따스하게 결합한다. 그러니 만약 이 영화에 4부가 더 이어지게 된다면, 그 챕터의 제목은 '블루'가 될 것이다.


★★★★☆ 

글쓴이 : 이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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