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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밤의 해변에서 혼자' 함부르크와 강릉, 두 도시에서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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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해변에서 혼자'에는 주인공 영희(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영희 혼자 해변에 있을 때는 낮이고, 어스름 저녁이 몰려오는 해변에 있을 때는 함께 간 사람들이 셋이나 더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그럴 수 있는 것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상황이 시공간적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희는 몇 장면을 제외하면 내내 누군가와 함께 있다. 더구나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에게 호의적이다. 극중에서 밤 장면보다는 낮 장면이 훨씬 더 많기도 하다. 하지만 영희는 그 모든 순간에 사실상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있다. 만일 영희가 밤에 해변을 홀로 거니는 장면이 이 작품에 담겨 있었다면 관객은 그 대목만이 이 영화의 제목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아마도 가장 쓸쓸한 영화일 것이다. 섣부른 짐작과 달리 그 쓸쓸함은 세상과 영화 사이의 괴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심플하면서도 정서적으로 강렬하며 더없이 솔직한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보는 이를 뒤흔든다. 극중 이야기는 진원이 괄호 쳐진 채 오로지 여진만 다룬다. 하지만 인물은 그 여진을 통째로 앓는다. 영희가 추운 겨울 카페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됐는지"라고 조용히 홀로 노래하는 순간을 관객들 역시 오래도록 잊기 힘들 것이다. ('아가씨'에 이어 김민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뛰어나게 연기해 다시금 놀라움을 안긴다.)

유부남 감독을 사귀다가 곤경에 처한 영희는 극중 두 차례의 술자리에서 다양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분노하는가 하면 자조하기도 하고, 어리광 부리듯 사랑스럽게 굴다가 여과 없이 원망이나 질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 밖에 없어. 솔직해야 해"라는 말을 하는 그녀답게 영희는 매순간 예민하게 호흡한다. 이 두 장면은 각각 길고 긴 하나의 쇼트에 담겨 있기에 감정의 낙차는 더욱 격렬하고 서늘하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모두 영희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영화의 창작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지 않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비교해보라.) 간절한 염원 같은 것이 인물의 고난을 감싸고 있다. ('강원도의 힘'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해변의 여인'에서 내비치기 시작했던) 극중 여성들간의 연대는 전에 없이 굵어졌다. ('옥희의 영화'와 달리) 인물의 정체성도 또렷하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그랬듯) 주인공을 꿈 속에 그냥 내버려두며 끝나는 일은 없다. 누군가가 일어나라고, 그러다 큰 일 난다고, 잠든 그녀를 기필코 깨워준다. 그리고 ('북촌방향'처럼) 인물을 붙박여 세워놓은 채 마침표를 찍는 대신,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어쨌든 또박또박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막을 내린다. 이제껏 19편의 장편을 내놓은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이례적으로 절실하게 감정을 불어넣은 이 신작이 홍상수 감독의 개인적 삶과의 좀더 깊은 관련 속에서 빚어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1부가 끝나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2부는 귀국한 영희가 강릉의 극장에서 영화 보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이건 어찌 보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결말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처럼 보인다. 혹은 '극장전'이 그랬던 것처럼, 1부의 내용을 영화 속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짙은 고독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생생한 환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일까. 죽음의 그림자를 넘겨다보았던 주인공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생각을 더 해야 해"라고 필사적으로 다짐하는 '극장전'의 주인공과 처지가 완전히 다른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주인공은 이제 더 무엇을 되뇌어야 하는 걸까. 함부르크나 강릉에서, 그 살기 좋다는 두 도시에서도, 영희는 여전히 그렇게 배가 고픈데.


★★★★

글쓴이 : 이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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