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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를 넘어 신의 경지에 올라선 '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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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고질라'의 아주 각별한 의미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 고질라 > 는 1954년 일본의 이시로 혼다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를 원작으로 삼는다. 1954년은 비키니 섬에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던 해이다. 당시 수소폭탄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천배의 위력을 지닌 것으로, 인근 섬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근처에서 참치조업을 하던 일본인 23명이 피폭되었다. 1945년 미국이 투하한 핵폭탄으로 두 도시가 절멸당한 경험을 안고 전후복구에 매진하던 일본에서는 비키니 섬 피폭 사건으로 반핵운동이 일어났다. 1954년 작 < 고질라 > 는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태평양에 잠들어 있던 고질라가 깨어나 선박을 납치하고 일본을 덮치는 모습을 담는다. 고질라가 내뿜는 방사능과 불길에 도쿄가 초토화되는데, 이러한 설정은 일본인들에게 불과 9년 전에 경험하였던 원폭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즉 고질라는 원폭에 대한 은유로, 영화는 대담한 풍자를 통하여 반핵 메시지를 드러낸다.

당시 < 고질라 > 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으며, 이후 수많은 속편이 만들어지면서 괴수영화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속편들 속에서 고질라는 인간에게 징벌을 가하며 원폭의 공포를 환기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의 수호자로 바뀌어갔다. 이것은 1955년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부흥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슬로건에 의해 원자력 기본법이 통과되고, 1965년에 핵발전소가 설립 가동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더욱이 1963년부터는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 철완 아톰 > 이 방영되면서 원자력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빠르게 잦아들었는데, 고질라의 캐릭터 변천은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캐릭터의 의미가 변하는 것은 미국영화 < 람보 >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2년작 < 람보 > (Firsr blood)의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의 내상으로 인해 괴물 같은 부적응자가 되어 미국사회와 충돌을 일으키는 존재로, 전쟁과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품은 캐릭터였다. 그러나 이후 속편에서 람보는 죄의식을 떨어내고 미국의 남성성과 보수성을 대변하는 존재로 바뀌어버린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천도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사회에서 신보수주의가 급격하게 힘을 얻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 고질라 > 의 역사적 변천을 고려해보았을 때, 2014년의 < 고질라 > 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뒤, 원자력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교묘하게 비껴간다. 영화는 고질라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캐릭터인 만큼 '인간의 수호자'라는 우호적인 입장을 철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악역을 내세워 핵개발이 초래하는 가공할 재앙을 경고하는 이중의 의미작용을 수행한다.

◆ 압도적인 재난 영화

영화는 1999년 필리핀의 광산이 붕괴되고, 그곳을 탐사하던 사람들이 거대한 괴생물체의 화석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건의 실체는 묻히고 외부에는 지진으로 알려진 채, 여파는 일본으로 옮아간다. 일본 핵발전소에서 갑자기 정전이 일어나면서 방사능이 누출된다. 필리핀 지진에 이은 여진의 결과라는 설명과 함께, 방사능이 누출된 도시는 폐허처럼 버려진다. 당시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핵발전소 과학자 조는 15년간 미친 듯이 사건에 매달려 지진에 의한 사고가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미국에서 폭탄해체 군인으로 성장한 아들 포드(애런 테일러 존슨)는 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에 왔다가 어마어마한 것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원작에서 이름을 따온 세리자와 박사(와타나베 켄)의 입을 통해 그 존재를 설명한다. 그것은 '미확인 거대 생물체'(Massive Unidentified Target Organism)의 약자인 '무토' (M.U.T.O)라고 불리는 고대생물이다. 대기의 방사능농도가 지금보다 높았던 원시지구에서 살다가 대기의 방사능 농도가 낮아지면서 수십만년 동안 지구 내핵에 가까운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인간이 핵폭탄, 핵발전소, 핵잠수함 등을 만들자 이를 양분삼아 땅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소수 사람들만 그 존재를 알고 비밀리에 연구해왔는데, 1999년에 방사능이 누출된 일본의 핵발전소 아래에서 방사능을 먹고 자란 무토는 이제 자기모습을 드러내면서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를 덮친다.

< 고질라 > 는 괴수물인 동시에 잘 짜인 재난영화의 성격을 띤다. 영화는 포드의 눈을 통해 재난의 참상을 보여준다. 거대 생명체가 도시를 때려 부수는 동안, 미군은 핵폭탄으로 유인해 살상하겠다는 계획으로 여러 작전을 수행한다. 그러나 무토가 내뿜는 강력한 전자기 펄스로 인해 모든 전자기기 사용이 무력화된다. 그 결과 첨단무기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모든 작전은 헛수고가 된다. 영화는 무토를 통하여, 인간의 핵개발로 인하여 깨어난 자연의 파괴적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보여준다.

영화는 일단 크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같은 크기를 이용한 위압감은 < 클로버랜드 > < 퍼시픽 림 > < 프로메테우스 > < 진격의 거인 > 등에서도 활용되어 인간존재의 미미함과 무력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었다. < 고질라 > 에서는 무려 30층 건물 높이에 해당되는 괴수의 크기를 설정한 다음, 가장 위압적으로 보이는 최적의 카메라 앵글과 뷰를 활용하여 실감을 극대화하였다. 쓰나미가 몰려오고, 도시가 파괴되고, 어마어마한 괴물들이 들러붙어 싸우는 장면이 주는 시각적 쾌감이 상당하다. 3D효과는 미미한 편이지만, 아이맥스 큰 화면으로 보았을 때, 어떤 재난영화나 괴수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스케일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 현대판 토템

영화는 "1999년 필리핀과 일본의 지진은 자연재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1999년은 터키, 대만, 필리핀 등에 큰 지진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도카이무라 JCO(일본 핵연료 주식회사)에서 임계사고로 직원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대피했던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영화는 연도를 통해 도카이무라 사고를 강하게 환기시키면서, 핵발전소의 정전으로 방사능누출이 일어나고, 도시전체가 버려지는 모습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를 직접 지시한다. 원전누출 사건이 일어난 뒤 15년 동안 통제구역으로 남아 있는 도시의 광경은 기괴하고 착잡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명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말하는 미군에게 세리자와 박사는 히로시마 원폭을 상기시키는데,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가장 먼저 핵무기를 사용한 미군이 핵 재난 앞에서 위선을 떨 수 없음을 경고한다. 핵무기로 무토를 살상하려는 미군에게 박사는 "고질라를 믿어보자"고 말한다. 무토가 인간의 핵개발로 초래된 파괴자라면, 고지라는 무토를 잡아먹는 포식자로, 무토에 의해 깨진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자정작용을 한다.

무토의 디자인은 중세서양의 변신한 뱀파이어나 용, 혹은 사마귀를 닮았고, < 에일리언 > 시리즈의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생태를 취한다. 인간과 전혀 친연성이 없는 모습이다. 반면 고질라는 전통적인 공룡의 모습에 곰 등 포유류의 모습을 담아 웅장하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고질라를 '인간의 수호자'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인 발상이다. 고질라는 악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한 역할도 아니다. 고질라는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정화를 위해 무토에 맞선다. 고질라와 무토의 싸움은 인간의 이해관계와 무관하며 인간의 존재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둘의 싸움은 마치 인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대자연의 몸살' 같은 재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인간으로 인해 초래된 지구 온난화를 지구 스스로 교정하기 위하여 갖가지 기상 이변이 일어나는데, 그 결과 국지적인 홍수나 산사태로 인해 도시가 파괴된다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유사하다. 영화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세리자와 박사의 말을 통해 주제를 직접 들려준다.

요컨대 고질라는 신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두려운 존재이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 그 힘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막강하고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처럼 두려운 존재를 인간은 토템을 통해서건 종교를 통해서건 '인간의 수호자'로 생각하며 외경심을 지녀왔다. 이를테면 고질라는 대자연을 유비하는 현대판 토템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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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 고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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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201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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